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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좋은 낮 시간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지만 전력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송전망과 전력계통이 생산된 전력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경우 발전량을 줄이는 '출력제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집중된 대표적인 지역이다. 전력거래소는 호남지역에서 낮은 전력수요와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겹칠 경우 지역수요와 타지역 송전가능용량을 발전량이 넘어서는 계통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전기를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를 넘어, 특정 시간과 지역에서 넘쳐나는 전력을 어떻게 저장하고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킬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낮에 남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버리지 않고 전국에 이미 보급돼 있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저녁 전력수요가 증가할 때 다시 사용할 수는 없을까.
단순한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관련 기술은 이미 실증 단계에 들어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 변동성과 출력제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남 7곳 523MW, 제주 1곳 40MW 등 총 563MW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집중된 호남지역 변전소 인근에 ESS를 구축해 송전망이 확충되기 전까지 태양광 출력제어를 완화하고 전력계통 안정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제주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기차를 전력망의 저장자원으로 활용하는 V2G(Vehicle to Grid) 실증도 진행되고 있다.
V2G는 전기차에 전력을 충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량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필요할 때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양방향 충·방전 기술이다.
전기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하나의 '이동식 에너지저장장치'로 역할을 확장하는 것이다.
전기차 10만 대면 최대 1~2GWh의 '움직이는 ESS'
전기차 배터리 전체를 전력망에 제공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차량 한 대가 운행에 필요한 전력을 제외하고 10~20kWh를 전력망 활용에 제공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10만 대에서 확보할 수 있는 이론적 에너지량은 1~2GWh에 이른다.
차량 숫자가 수십만 대, 수백만 대로 늘어나면 잠재적 규모 역시 커진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전력 저장만을 목적으로 별도의 대규모 배터리를 새로 구축하는 고정식 ESS와 달리 자동차 소유자가 이미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론적 저장용량과 실제 전력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은 전혀 다른 문제다.
V2G의 가능성만 보고 대규모 도입을 서두르기 전에 충전 인프라와 계통 수용능력, 차량 이용행태, 배터리 열화와 비용 문제를 함께 따져야 한다.
첫 번째 벽은 '자동차 숫자가 아니라 충전시설'
전기차가 10만 대 있다고 해서 10만 대의 배터리를 동시에 전력망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광 발전량이 가장 많은 낮 시간에 자동차가 실제 충전기에 연결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낮에 발생한 잉여전력 1GWh를 6시간에 걸쳐 전기차가 흡수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평균 약 167MW의 충전부하가 필요하다.
차량 한 대당 7kW로 충전한다면 평균 약 2만4천 대가 동시에 연결돼 있어야 하는 규모다.
따라서 전기차 보급 대수보다 중요한 것은 '태양광이 남는 시간에 실제로 몇 대의 자동차를 전력망에 연결할 수 있는가'다.
기존 고속도로 휴게소나 급속충전소 중심의 충전정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단지와 회사, 관공서, 학교, 공영주차장, 대형 상업시설 등 자동차가 낮 동안 장시간 머무는 장소에 스마트 충전시설을 구축하고 태양광 발전량에 따라 충전출력을 조절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을 때 자동차 충전을 늘리고 발전량이 줄어들면 충전출력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전기차는 전력망의 '조절 가능한 수요'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벽은 '발전하는 곳과 자동차가 있는 곳이 다르다'
또 다른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지역과 자동차가 머무는 생활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남의 태양광 발전시설은 농어촌과 해안 등 외곽지역에도 넓게 분포하는 반면, 낮 시간 상당수 승용차는 광주와 목포, 순천, 여수 등 도시와 산업·생활권에 머문다.
전기를 생산하는 장소와 이를 저장할 자동차의 위치가 다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전손실도 발생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발전지역에서 소비지역까지 전력을 이동시킬 송·배전망의 수용능력이다.
전력거래소 역시 호남지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지역수요와 타지역 송전가능용량을 넘어설 경우 출력제어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전남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기를 무조건 도시의 전기차까지 보내 저장하는 방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발전지역에서 직접 소비하거나 현지 ESS에 저장하는 방법과 도시지역 전기차의 스마트 충전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세 번째 벽은 '배터리는 누구의 것인가'
전기차 배터리는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자동차 소유자의 재산이다.
낮에 충전하고 저녁에 다시 방전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충·방전 과정의 에너지 손실뿐 아니라 배터리 열화와 자동차 제조사의 보증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차량 소유자가 자신의 배터리를 전력망에 제공하면서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다면 대규모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V2G가 실제 시장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전력망에 제공한 전력의 가치와 계통 안정화에 기여한 가치, 배터리 사용에 따른 비용 등을 반영해 차량 소유자에게 합리적인 보상이 돌아가는 시장구조가 필요하다.
정부가 수십만~수백만 대의 자동차 배터리를 직접 관리하고 매년 예산으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 역시 지속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대안 가운데 하나는 여러 대의 전기차와 ESS, 태양광 등을 하나의 전력자원처럼 묶어 관리하는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 방식이다.
민간사업자가 다수의 전기차 충·방전을 통합 관리하고 전력시장과 거래한 뒤 수익을 차량 소유자와 나누는 시장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국가의 직접적인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분산된 배터리를 전력망 자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ESS냐 전기차냐'가 아니라 각각 잘하는 일을 맡겨야
현 단계에서 전기차가 고정식 ESS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고정식 ESS는 발전지역이나 변전소 인근에 설치해 필요할 때 확실하게 충·방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는 이미 존재하는 배터리를 활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언제 어디에 몇 대가 연결돼 있을지를 완벽하게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두 기술을 경쟁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지역에서는 고정식 ESS가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잉여전력을 흡수하고, 도시와 산업단지에서는 낮 시간 주차된 전기차의 스마트 충전을 통해 추가적인 전력수요를 만든다.
저녁 전력수요가 증가하면 V2G에 참여한 차량 가운데 운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일부 전력을 다시 계통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ESS에 한 번 저장한 전기를 다시 전기차 배터리에 넣었다가 또 꺼내는 불필요한 이중 저장은 충·방전 손실과 배터리 사용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발전량 확대'에서 '전력의 시간 이동'으로
재생에너지 정책의 다음 단계에서는 발전설비를 얼마나 더 설치할 것인가뿐 아니라 '언제 생산된 전기를 언제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낮에는 태양광 전력이 넘치는데 저녁에 전력수요가 증가한다면 결국 전기를 시간적으로 이동시키는 저장기술과 시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기차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자동차가 단순히 전력을 소비하는 제품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전력을 저장하고 공급하는 수많은 분산형 배터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경제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역별 출력제어량과 발생시간, 송·배전망 여유용량, 실제 낮 시간 차량 주차 위치, 스마트·양방향 충전기 구축비용, 충·방전 효율, 배터리 열화비용, 자동차 제조사의 보증정책, 차주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 등을 실제 데이터에 대입해야 한다.
그리고 고정식 ESS를 추가 구축하는 비용과 전기차를 활용하는 비용을 같은 조건에서 비교해야 한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보다 출력제어 감소와 전력망 안정, 피크전력 감소 등에서 얻는 편익이 큰 구간에서만 V2G를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기차는 자동차인가, 이미 존재하는 에너지저장장치인가
정부는 이미 전남과 제주에서 대규모 ESS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제주에서는 V2G를 포함한 분산에너지 활용 실증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질문은 'ESS냐 전기차냐'라는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닐 수 있다.
발전지역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먼저 소비하고, 낮 시간 자동차 충전을 조절해 추가 수요를 만들며, 그래도 남는 전력은 발전지역 ESS에 저장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방식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향후 전력망은 대형 발전소에서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력을 보내는 구조에서 태양광과 풍력, ESS, 전기차, 공장과 건물이 서로 전력을 주고받는 분산형 시스템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남과 제주에서 낮 시간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전기차를 새로운 전력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다만 V2G가 정답이라는 결론부터 내려서는 안 된다.
고정식 ESS와 전기차 가운데 어느 방식이 어느 지역과 시간대에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잉여전력을 살릴 수 있는지를 실제 데이터로 검증하는 것이 먼저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경쟁력은 앞으로 발전설비의 숫자뿐 아니라 남는 전기를 얼마나 버리지 않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옮길 수 있느냐에서 결정될 수 있다.
"전남광주미디어포럼" 공동취재단
뉴스맘 전하린 기자
2026.09.09 08:53












